엠보싱 화장지처럼 올록볼록한 ‘그래핀 버블(graphene bubble)’이 꿈의 나노물질로 떠올랐다. 평평한 그래핀보다 화학적 반응성이 높아져 새로운 성질을 가질 수 있는 원리가 밝혀지면서다.

유니스트(UNIST) 자연과학부 로드니 루오프 특훈교수(IBS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장) 연구팀은 표면이 볼록하게 돌출된 그래핀 버블을 제작해 평면 그래핀보다 화학적 반응성이 높음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고 대학 측이 13일 밝혔다. 라만 분광법을 활용한 이번 연구는 그동안 잠재적 활용가치는 높지만 제작이 어려웠던 그래핀 버블의 응용처를 찾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루오프 교수팀은 먼저 흑연에서 떼어낸 고품질 그래핀으로 연구에 적합한 크기와 높이를 가지는 그래핀 버블을 만들었다. 기판 위에 그래핀 박막을 올린 뒤 가열하자 기판 표면에 흡착됐던 불순물 분자들이 기화돼 그래핀 안에 갇히면서 그래핀 일부분이 볼록하게 솟아 올랐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그래핀 버블의 분자 구조를 라만 분광법으로 측정했다. 측정 결과 그래핀 버블은 화학적 반응성이 평면 그래픽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평평하던 그래핀의 표면이 볼록하게 솟아오르면서 굴곡이 나타나 탄소 원자 사이의 거리는 늘어나고 장력(tension)이 생겨난다. 이에 따라 탄소 원자 사이의 결합력은 약해지고 화학적 반응성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만 분광법은 분자에 쬔 빛이 산란돼 방출될 때 빛 일부가 물질의 진동에너지만큼 광자(photon)를 방출해 에너지를 잃게 되는 라만 현상(Raman Effect)를 이용해 분자 구조에 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루오프 교수는 이와 관련해 "마치 고무줄을 계속 잡아당기면 양 끝의 거리가 늘어나고 팽팽해지다 결국 끊어지는 것과 비슷안 원리"라면서 "탄소 원자 사이의 결합이 약해지기 깨문에 외부 요소에 의한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또 그래핀 버블의 일부만 가열하고 라만 분광법으로 측정한 수치를 바탕으로 해당 위치의 온도를 계산해냈다. 이어 이를 이용해 그래핀 버블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열이 확산되는 속도를 측정해 그래핀 고유의 특성인 '높인 열전도성'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펑딩 신소재공학부 특훈교수(IBS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 그룹리더)는 "이번 연구 전까지 그래핀 버블의 내부 온도를 측정하는 연구는 거의 없었고, 열전도 측정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그래핀 버블의 온도값 계산 뿐 아니라 레이저를 쏘면 그래핀 버블의 온도가 높아진다는 점에 착안해 그래핀 버블의 온도를 제어하는 방법도 알아냈다"고 했다.

그래핀 버블 위에 레이저 빛을 쏘면 입사광과 반사광이 겹치면서 정상파(standing wave)가 형성된다. 정상파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서 제자리에서 진동하는 파동인데, 이것이 그래핀 중심에서 최대치가 돼 온도가 가장 높아졌다. 반대로 그래핀 버블의 가장자리에 가까울수록 정상파 형성이 어려워 온도가 낮아진다. 레이저 빛의 강도에 따라 온도 변화 폭이 결정된다는 것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루오프 교수는 "이번 연구는 라만 분광법으로 쉽게 그래핀의 열전도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을 뿐 아니라 온도 조절을 통해 그래핀 버블에서 반응을 유도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며 "그래핀 버블의 물리적 성질을 이해한다면 다양한 응용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래핀 버블 안에 특정 가스를 채워 레이저 빛을 쏴 온도를 높이면 내부에서만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초소형 반응기가 될 수 있다"며 "그래핀 버블 부분만 온도를 계속 높여 파열을 유도하면 특정 분자만 걸러낼 수 있는 분자체(molecular seive)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물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5월 3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송강섭 기자 successnews@successnews.co.kr

Copyright ⓒ 썩세스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