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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돋보기] 무역확장법, 트럼프의 요술방망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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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 기자 작성일승인 2018-03-03 15:22 수정 2018-03-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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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근거로 내세운 미국의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232조가 새삼 관심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높은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근거로 내세운 미국의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232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슈퍼 201조’ ‘슈퍼 301조’ ‘세이프가드(safeguards)' 같은 말은 좀 들어봤지만 무역확장법은 처음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낯선 만큼 오랫동안 죽어 있다가 부활한 법이다. 

무역확장법은 1962년 제정됐다. 전례 없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수입 물량 제한, 세이프가드를 취할 수 있는 일방적인 권한을 부여한 법이다.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저해할 경우 대통령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이렇게 절대적인 권한을 대통령에게 준 것은 1962년의 국제 정세와 관련이 깊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시도하고 미국이 해상 봉쇄에 나서면서 ‘쿠바 미사일 사태’가 일어난 해다. 당시 핵전쟁의 공포가 미국에 널리 퍼졌고 ‘안보’라는 명분이 모든 논의를 압도했다. 동서간의 냉전에서 이기기 위해 동맹국과의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적대국들을 억누른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옛날 일이다.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무역 질서가 세워진 지 오래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미국은 ‘자유무역’을 이끌어왔으나 점차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쇠퇴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보호무역 조치를 시행해왔다. 1988년의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merce Act of 1988), 2015년의 무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Enforcement Act of 2015) 등에 교역 상대국을 제재하는 조항들이 많이 들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한국산을 비롯한 수입 철강제품에 8~30%의 관세를 부과한 것도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삼성과 LG 등의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취한 것도 모두 이런 법 조항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정도로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지난해 4월 미국 상무부에 수입 철강제품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조사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1981년 이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무역확장법을 부활시켰다. 창고에 버려졌던 ‘요술 방망이’를 다시 꺼낸 것이다. 국제적인 무역질서가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진 옛날 법이라 미국 업계의 피해 주장, 피해기업의 제소와 조사, 공청회 등 중간 절차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 그리고 1962년과 2018년의 ‘안보’ 개념은 크게 다르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것이 안보와 관계된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모든 제품과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휘두를 수 있는 방망이다. 맞서 때릴 힘이 없다면 당하는 쪽은 일방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 

더 고약한 것은 세계의 모든 나라가 트럼프 대통령이 왜 이러는지 다 안다는 점이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전략이다. 쇠락한 공업지대의 백인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 업계에도 피해가 간다는 목소리는 아예 들을 생각도 없다. 중국이나 유럽연합(EU)도 이런 조치에 대해 대대적인 보복으로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는 없다. 

영향력이 미약한 우리나라의 입지는 더욱 좁다. 트럼프 대통령이 더 큰 사고 치지 않고 11월이 지나가길 바라야 하는 처지다. 선거가 끝났다고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으니 최대한 우리 입장을 미국에 설명하면서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는 게 상책일 뿐이다.
 

김병훈 기자 hyundam@succes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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