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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전환 시대] ④ ‘비핵화’를 넘어 큰 시각으로 한반도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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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제 편집위원 작성일승인 2018-05-17 17:29 수정 2018-05-25 15:3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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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말폭탄을 주고 받았다.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겨냥해 선제공격 한 방을 날렸고, 볼턴 보좌관이 17일 맞대응 한 방을 날렸다.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불투명한 게 아니냐는 성급한 예측이 나왔지만 전형적인 기싸움에 불과하다.
지난해 자주 봤던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 교환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북한은 외무성 명의도 아니고 국제무대에서 거의 사라졌던 김계관 개인을 앞세워 말폭탄을 날렸다. 공격하는 흉내만 내면서 미국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이 이 정도 메시지를 읽지 못할 리 없다. 볼턴 보좌관 역시 “CVID가 확고한 원칙”이라고만 강조했다. “김계관은 문제 많은 인물”이라고 김계관 개인을 비난하는 정도에 그치고 북한을 건드리지 않았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CVID를 요구해왔다. 그리고 북한은 CVID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협력해 CVID를 성사시키면 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다.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절충하면 된다.
미국 강경파의 대표격인 볼턴 보좌관은 생화학무기를 거론하고, 북한의 핵을 미국으로 가져와 보관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북한을 자극한다. CVID에 생화학무기는 없다. 북한의 핵을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조항도 없다. 본래 주제와 관계없는 의제로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려 비핵화 협상을 망치려는 의도일까?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신념에 빠져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
현재 비핵화 협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남측의 서훈 국가정보원장, 북측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 정보라인이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볼턴 보좌관은 훈수를 두는 역할이다. 훈수꾼 때문에 판이 깨질 우려가 큰 건 아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할 변수다. 흔히 강경파로 일컬어지는, 습관적 사고에 갇힌 사람이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일을 그르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11일(현지 시간) 북한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비핵화한다면 “한국 수준의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도 지난 13일 “북한이 비핵화 작업에 착수하면 북한의 미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발언대로라면 비핵화를 완수한 북한은 미국의 지원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정세는 어떻게 달라질까? 간단히 물어 ‘북한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누구와 더 가까운 친구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한국전쟁 이후 친소련파와 친중국파를 모두 숙청했다. 내부 권력투쟁과 얽혀있지만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자주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주체사상도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김정일 정권도 등거리 외교로 자주성을 지키려 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중국에 대한 의존이 점차 심화됐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식량 등 가장 근본적인 자원을 중국에서 공급받으면서 자주성을 지키기 어려웠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하자마자 기존 권력의 핵심인 장성택을 숙청했다. 그리고 정권을 위협하는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다. 비정한 권력투쟁의 결과지만 장성택, 김정남 둘 다 친중국파라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이 중국에 기대 체제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것을 경계한 측면이 있다. 중국이 오랫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거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일성 이래 강대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해 자주성을 지키는 것은 북한 정권 생존의 사활적 전략이다. 괴뢰정권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선대의 유훈 중 유훈이다. 북미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김정은 위원장 역시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기존 전문가들의 예측은 거의 맞은 게 없다. 특히 미국을 포함해 국내의 보수 우익 진영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비핵화’ 이니셔티브를 예상한 전문가는 하나도 없었다. 소위 ‘싱크탱크’의 전문가나 관료들은 기존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다. 기존의 자료와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발상 자체가 다른 주제는 보고서를 쓰기 어려우니까 아예 다루지 않는다. 국내든 미국이든 마찬가지다.
미국과 북한 사이 비핵화 협상이 타결될지 장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이 시점에 급하게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는 의도를 읽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정권 수립 이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가 당면 과제지만 ‘비핵화’를 넘어 더 크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
미국과 북한, 그리고 우리 사이에 헤쳐 나가야 할 많은 암초가 놓여있다. 남한과 북한, 중국과 미국, 심지어 일본에도 북미관계 정상화를 꺼리는 세력은 얼마든지 있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이런 암초를 헤쳐 나가는 ‘운전자’를 말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승객이 즐겁게 미래를 향해 여행하도록 안전하게 차를 모는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전국제 편집위원 successnews@succes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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