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탁기 · 태양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가 WTO 제소 등 맞대응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WTO에서 승리하더라도 불이행시 뾰족한 대책이 없어 '압박' 이외의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3일 미국의 세탁기, 태양광 세이프가드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이날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대책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해 WTO 협정상 보장된 권리를 적극 행사할 것"이라며 "과거 WTO 상소기구 재판관 경험에 비춰 승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와 보상 논의를 위한 양자협의를 개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본부장은 "미국에 양자협의를 즉시 요청할 계획"이라며 "적절한 보상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미국 제품에 대한) 양허정지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입산 대형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 관세 부과를 승인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놓은 세이프가드 권고안에 따른 것이다.

세탁기의 경우 첫해에는 최초 수입되는 120만대에 20%, 그 이상에는 50%의 관세가 부과된다. 2년차에는 최초 120만대에 18%, 초과 물량에 45%가 각각 부과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 물량은 연간 약 300만대에 이른다.

태양광 패널과 모듈에 대해서도 세이프가드 관세가 부과된다. 총발전량 2.5기가와트 초과 제품에 대해 첫 해 30%, 2년차에 25%, 3년차에 20%, 4년차에 15%의 관세가 부과된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세이프가드에 대항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WTO 제소와 양허정지(보복관세 부과)의 크게 두 가지다. 김현종 본부장이 이들 카드 모두를 언급한만큼 맞대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비친 셈이다.

WTO 협정상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려면 크게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급격한 수입 증가 ▲자국 산업의 심각한 피해 ▲급격한 수입 증가와 심각한 산업 피해간의 인과관계가 그것이다. 

김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는 발동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있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TO 제소 시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아울러 정부는 미국 측에 양자협의를 즉시 요청해 세이프가드에 따른 보상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WTO협정은 세이프가드로 시장 개방이 축소될 경우 상대국에 다른 품목의 관세 인하 등 적절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이 같은 보상 협의가 결렬될 경우 미국산 제품에 대한 양허정지(보복관세 부과)도 추진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하지만 이들 카드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WTO 제소는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다. WTO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무엇보다 승소하더라로 불이행 시 뾰족한 대응책이 없어서다. WTO 제소의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과의 세탁기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미국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수출한 세탁기에 대해 각각 9.29%, 13.2%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물렸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같은해 8월 미국을 WTO에 제소했고 2016년 9월 최종 승리했다. WTO는 미국에 대해 2017년 12월26일까지 관세 철회의 이행을 권고했지만 미국은 여지껏 판정에 따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분쟁해결기구(DSB) 정례 회의에서 미국의 반덤핑 관세에 따른 한국산 세탁기의 대미 수출 차질액 7억1100만달러(약 7600억)에 상승하는 보복관세를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양허정지(보복관세 부과)의 승인을 요청했다. 

우현석 객원기자 success@succes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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