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체 물질에 진동을 일으켜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알아냈다. 적외선을 쏘아 원자를 춤추게 만들어 전자의 '스핀(spin)'을 정돈하는 게 핵심이다. 이번 발견은 전자의 자기적 성질을 전자공학에 이용하는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구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자연과학부 박노정 교수팀은 자기적 성질을 띠지 않는 물질로부터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자석으로 만드는 방법을 최신 계산 방법으로 증명했다고 2일 UNIST가 밝혔다. 

박 교수는 적외선으로 '포논(phonon)'을 생성해 전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방법을 이용했다. 포논은 고체 속을 흐르는 진동(소리)의 입자로, 포논이 생기면 원자가 춤추듯 진동한다.

모든 물질은 스핀이라는 '자석의 씨앗'을 갖고 있다. 스핀 방향을 나란히 정렬시키면 자성을 띠게 만들 수 있다. 자기장이나 빛으로 직접 스핀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번 연구는 원자를 춤추게 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자의 스핀 방향을 정렬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철을 자석으로 만들려면 강한 자석을 가까이 붙이면 된다. 이때 생성된 자기장이 전자의 스핀 방향을 나란히 정렬시킨다. 물리학적 관점에서는 자기장이 존재하면 물질계의 '시간 대칭'을 깨트려 전자의 스핀을 한 방향으로 정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 대칭이란 무엇인가. 박 교수는 "야구공이 날아가는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가 있다면 그것을 거꾸로 돌려도 이상하게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는 야구공의 운동이 시간대칭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자기장이 있는 공간에서는 시간대칭성이 없어서 전자의 움직임을 촬영한 비디오를 거꾸로 돌린다면 존재할 수 없는 궤적이 나온다. 이런 시간대칭성이 깨진 상황 중 하나가 스핀들이 한 방향으로 정돈되는 것, 즉 자석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연구진은 이차원 반도체 물질인 몰리브덴황(MoS₂)을 자석으로 만드는 데 적외선을 이용했다. 적외선의 영향으로 황 원자는 한 방향으로 회전운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시간 대칭이 깨진다. 이는 결국 전자의 스핀 방향을 정렬시켜 몰리브덴황이 자성을 띠도록 한다. 다시 말해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원자가 자기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연구로 적외선처럼 에너지가 낮은 파장의 빛으로 전자의 스핀을 조절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전자의 스핀 방향만 조절해 신호로 이용하는 전자공학, 스핀트로닉스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전자의 스핀으로 신호를 만들면 전자를 직접 이동시키는 것보다 연산속도가 빠르고 저장용량이 크며 에너지 소비도 적은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다"며 "이번 연구가 스핀트로닉스를 구현하는 물리학적인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UNIST 진호섭 자연과학부 교수와 신동빈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참여했다. 연구 성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2월 12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송강섭 기자 successnews@successnews.co.kr

Copyright ⓒ 썩세스경제